문학/오늘의 시

별 헤는 밤 _ 윤동주

ellyades 2021. 9. 15. 18:08

 

 

 

 

 

오늘의 시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입니다.

 

가을 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고 화자는 그 별들을 헤아리며 그리운 것들을 떠올립니다.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시, 어머니' 등은 화자가 그리워하는 아름다운 대상들입니다.

 

별이 아스라히 멀듯이 화자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대상들에 닿을 수 없어 애틋한 그리움만 느낍니다.

 

8연에 이르러 화자는 무엇인지 그리워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는 덮어버리는데, 이러한 행위는 화자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가치를 현재는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의 표현, 즉 자아성찰의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10연에 이르러 화자는 가을과 겨울을 지나 봄이 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자신의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라는 표현 속에는 힘겨운 현실을 이겨내려는 의지와 죽음을 넘어선 부활의 의미(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가 느껴집니다.  

 

마지막 연을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관련지어 해석해 본다면 화자의 조국 광복에 대한 신념과 희망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